토요일 이른 새벽에 출발하여 포항의 기숙사에 들러 애를 태우고, 학교 다닐 적 사촌동생하고 배낭여행 일정 중 들른 이후로 업무 때문에 잠깐 지나친 것 말고는 처음인 경주엘 갔다.
시간 여유가 있으면 이곳 저곳 들러보고 싶은 곳이 많았으나, 고작 황남동 고분군과 첨성대, 불국사, 석굴암 등(전형적인 중, 고등학생 수학여행 코스다.)을 주마간산 식으로 둘러보는 데에도 어둠이 짙을 무렵에 이르러서야 마칠 수 있었다.
불국사의 자운교나 대웅전 마당의 석가탑, 다보탑은 예전에 직접 보기도 했고, 사진이나 그림으로 하도 많이 봐 왔지만, 볼 때마다 그 느낌이 새롭다. 저게 모두 화강암을 깎아 만든 조형물이라니... 석굴암 역시 본존좌불을 대하는 순간마다, 헉! 하고 숨이 막힐 듯한 감동을 느낀다. 게오르규는 그 자리에서 엎드려 절을 올렸다던데....
그런 건축물들을 보면서 느끼는 것이 '경탄'이라는 단어로 표현될 수 있다면, 반면 황남동 고분군들의 거대한 민둥 무덤들을 보는 느낌은 좀 더 복잡미묘했다. 그 공간배치나 형태와 같은 조형미에 눈길이 가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한 사람의 죽음과 무덤이라는 관점을 버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죽을 때마다 그 죽음에 대한 나름의 격식을 갖추고 또 주검에 대한 의식을 행하지만 죽고 난 이후에도 그 가치에 대한 평가가 제 각각이며 후속으로 따르는 절차와 양태가 제 각각이란 생각과, 저토록 거대한 무덤을 축조하는 데 소요되어야 했을 수 많은 민초들의 땀과 눈물에 대한 불편한 감정이 그보다 수만 배(?)는 더 한 다른 나라의 다른 건조물들을 볼 때 느끼는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각설하고, 인간이 죽어서까지 다른 생명체와 구분 되어져야 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만물 순환 상의 한 사이클로 나고 죽음이 있다면 시베리아 지역에 사는 일부 몽골리안 부족들과 히말라야의 일부 고산지대 주민들처럼 주검을 새나 동물들이 먹기 좋게끔 손질해서 바치는 것까지는 못하더라도 죽어서까지 산과 들을 황폐하게 하는 무덤을 만드는 일은 하지 말았으면 한다. 자연으로부터 온갖 것들을 얻으면서 살아가는 인간들이 무언가는 그를 위한 일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어떤 이(일본의 한 여행가)는 주검을 화장해서 재로 뿌리는 인도라는 나라와 일생을 자연으로부터 받으며 살아왔으니 죽어서는 그들에게 되돌려줘야 하기에, 기꺼이 새와 야생짐승들에게 바치는 아메리카 인디언이 생활한 아메리카대륙이 왜 생기가 다른가에 대해서 말하기도 하지만, 그런 정도까지의 비약은 부질 없는 일이고, 다만 온 산하를 무덤이라는 해괴망측한 인공지물로 덮어버리려는 인간의 단견들이 안타까울 뿐이다.
하여 난 죽으면 새나 짐승에게 내 몸을 던져 보시하지는 못할 망정 결코 자연을 해치며 봉분을 만들어 뗏장을 덮는 일은 하지 않으리라 다짐을 한다. 어릴 적부터 워낙 산을 좋아했고, 산과 더불어 자랐으며, 결국은 산으로 돌아갈 날을 준비하는 자가 산을 사랑하는 수 많은 일들 중 아주 작은, 보잘것없는 단 한 가지만은 확실히 실천하고 싶은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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