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더러 진달래꽃을 노래하라 하십니까
이 가난한 시인더러 그 적막하고도 가녈픈 꽃을
이른 봄 산골짜기에 소문도 없이 피었다가
하로 아침 비바람에 속절없이 떨어지는 그 꽃을
무슨 말로 노래하라 하십니까
노래하기에는 너무도 슬픈 사실이외다
백일홍같이 붉게 붉게 피지도 못하는 꽃을
국화와 같이 오래오래 피지도 못하는 꽃을
모진 비바람 만나 흩어지는 가엾은 꽃을
노래하느니 차라리 붙들고 울 것이외다
- 박팔양, 봄의 선구자 '진달래'를
눈이 부시네 저기 난만히 묏등마다
그날 쓰러져간 젊은같은 꽃사태가
맺혔던 한이 터지듯 여울여울 붉었네
그렇듯 너희는 지고 욕처럼 남은 목숨
지친 가슴위엔 하늘이 무거운데
연연히 꿈도 설워라 물이 드는 이 산하
- 이영도, 진달래 -
'진달래'라는 제목의 시입니다. 70년대 후반, 대학가에서는 4.19 학생혁명운동을 추모하며 이 시를 노래로도 만들어 불렀지요. '그렇듯 너희는 지고, 욕처럼 남은 목숨'으로 이어지는 2절 첫 가사에서는 살아있는 것조차 욕스러웠던 당시 척박한 현실을 처절하게 보여줍니다. 대개는 한 차례 시위를 치르고 난 뒤, 막걸리 집에 둘씩 셋씩 모여 앉아 눈물 지으며 불렀던 노래였어요.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진달래 피고'로 시작되는 노래도 있지요. 진달래는 우리 고향 산천에 지천으로 피어나는 대표적인 우리 꽃입니다. 아직 겨울 빛을 벗지 못한 낮은 산 허리를 진분홍 빛으로 수놓는 진달래는 아름답지만 척박한 꽃입니다.
진달래는 척박한 우리 민족 한의 역사와 정서를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영화 '남부군'에서는 산으로 몰린 빨치산들이 먹을 것이 없어 진달래를 따먹는 장면이 애처롭게 그려집니다.
이 땅, 이 산하가 전쟁과 혼란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헤매고 있는 동안에도 봄이면 어김없이 진달래는 이 척박한 산과 들을 진분홍 빛으로 수놓았습니다. '금강'의 시인
진달래 산천(山川)
길가엔 진달래 몇 뿌리
꽃 펴 있고,
바위 모서리엔
이름 모를 나비 하나
머물고 있었어요.
잔디밭엔 장총(長銃)을 버려 던진 채
당신은
잠이 들었죠.
햇빛 맑은 그 옛날
후고구렷적 장수들이
의형제를 묻던,
거기가 바로
그 바위라 하더군요.
기다림에 지친 사람들은
산으로 갔어요
뼛섬은 썩어 꽃죽 널리도록.
남햇가,
두고 온 마을에선
언제인가, 눈먼 식구들이
굶고 있다고 담배를 말으며
당신은 쓸쓸히 웃었지요.
지까다비 속에 든 누군가의
발목을
과수원 모래밭에선 보고 왔어요.
꽃 살이 튀는 산허리를 무너
온종일
탄환을 퍼부었지요.
길가엔 진달래 몇 뿌리
꽃 펴 있고,
바위 그늘 밑엔
얼굴 고운 사람 하나
서늘히 잠들어 있었어요.
꽃다운 산골 비행기가
지나다
기관포 쏟아 놓고 가 버리더군요.
기다림에 지친 사람들은
산으로 갔어요.
그리움은 회올려
하늘에 불 붙도록.
뼛섬은 썩어
꽃죽 널리도록.
바람 따신 그 옛날
후고구렷적 장수들이
의형제를 묻던
거기가 바로
그 바위라 하더군요.
잔디밭에 담배갑 버려 던진 채
당신은 피
흘리고 있었어요.
전쟁과 빨치산, 4.19학생혁명, 우리 산하를 붉게 물들은 모든 사건에 진달래는 함께 했습니다. 한때는 진달래를 북한의 나라꽃이라 하여, 진달래를 그린 민중화가를 국가보안법으로 구속한 적도 있었지요. 그런데 북한의 나라꽃은 진달래가 아니라 산목란이랍니다.
진달래
속 명 : 진달래나무, 음산홍, 산철쭉, 두견화, 참꽃
분포기 : 전국의 산야지
개화기 : 4월
결실기 : 10월(삭과)
용 도 : 식용(꽃).관상용
특 징 : 여러해살이 낙엽관목 높이 2m내외
꽃 색 : 분홍색
기 타 : 꽃은 술을 담아 마시기도 하며 화전의 재료가 바로 이 꽃이다. 민간에서 강장, 이뇨, 건위 등에 약으로 쓰인다.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우리다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 김소월, 진달래 꽃 -
진달래를 '두견화'라 하는데 얽힌 전설이 있습니다.
중국 촉나라의 임금 두오의 호는 망제였는데, 그는 왕의 자리를 별령에 넘겨주었습니다. 별령은 형주라는 땅에 있는 우물 속에서 나와 촉나라의 망제에게 택함을 받아서 재상의 자리에 올랐다는 전설 상의 사람입니다. 망제는 그 뒤 세상을 피하고 다시 왕의 자리에 오르기를 원하였지만 뜻대로 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죽어서 두견새로 화했습니다.
해마다 봄이 오면, 밤낮 슬피 울어 촉나라 사람들이 그 소리를 듣고 '우리 망제의 혼이라'라고 말했다 한다. '두견새가 와서 울 제 봄은 적막하구나'하는 두견의 노래는 슬픔을 자아내게 한다. 밤낮 울고, 울다 보면, 목이 터져서 피를 토했을 것이고, 그것이 그 곳의 진달래꽃을 핏빛으로 물들였다는 것입니다.
진달래
박노해
겨울을 뚫고 왔다
우리는 봄의 전위
꽃샘 추위에 얼어 떨어져도
봄날 철쭉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이 외로운 겨울 산천에
봄불 내 주고 시들기 위해 왔다
나 온몸으로 겨울 표적되어
오직 쓰러지기 위해 붉게 왔다
내 등뒤에 꽃피어 오는
너를 위하여
삼월 삼짇날 황진이 묘를 찾아 제사를 지내주었던 조선 중종 때 문인 백호 임제(1549~1589)의 〈진달래 꽃전을 부치며〉라는 시입니다.
시냇가 돌을 모아 솥뚜껑 걸고
흰가루 참기름에 진달래꽃전 부쳐
젓가락 집어 드니
가득한 한 해의 봄빛 향기 뱃속에 스며든다.
진달래는 먹는 꽃입니다. 먹을 수 있는 진짜 차꽃이라는 뜻으로 참꽃이라고도 부릅니다. 〈동국세시기〉에는 ‘3월 삼짇날 진달래꽃으로 화전을 부쳐 먹는다’고 했습니다. 유득공(1749~?)의 〈경도잡지〉에도 삼월 삼짇날 ‘진달래 꽃을 따다가 찹쌀가루에 반죽해 둥근 떡을 만든다. 이 것을 참기름에 지져내면 화전이 된다’고 했습니다. 또 진달래로 국수를 뽑아 화면을 만들어 먹는다고도 했습니다.
진달래꽃이 낭만적으로 나타난 가장 오래된 문헌은 〈삼국유사〉입니다. 선덕여왕 때 강릉 태수인 남편을 따라 동해안을 거닐던 수로부인은 바닷가 천길 벼랑에 피어난 철쭉꽃을 탐내게 됩니다. 마침 소를 몰고 가던 노인이 이 꽃을 꺾어 부인에게 바치고 <헌화가>를 부른다는 설화입니다.
웬 진달래 타령이냐고요?
그저 좋으니까요.
진달래…연분홍 꽃잎을 하늘거리며 우리 산천 어디에나 피어나 새 봄을 알리는 진달래…진달래가 좋습니다.
미치도록 좋습니다..^^
(여기저기 모아다가 짜집기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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