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주 오랜 기간 우리 몸과 두뇌에 깊이 각인 된 조직 및 인간관계에 대한 사고는 유교적
질서에 입각한 권위주의다. 즉, 한 집단의 리더는 언제나 소위 가장으로 통칭되는 아버지 혹은 강한 권위로 치장된 남성이어야 했다. 그들의 권위는
반복적인 행사로써 견고해지고 확장된다. 그리고 그 영향력 범위 내에 있는 사람들의 자발적 혹은 비자발적 복종을 이끌어낸다. 그의 억압적 지배는
'부양'이라는 저항하기 힘든 무기 아래 합리화되고 더욱 강화된다.
우리는 무의식 중에 자유를 그리워하면서 주어진 자유에 혼란스러워하고 불편해 하는, 그래서 마침내는 다시 권위의 우산 아래 숨어버리는 경우를 흔히 경험한다. 규정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새로운 무엇인가를 창조해 내고, 길이 없는 곳을 몸소 밟으며 새로운 길을 만드는 것을 꺼려한다. 길이 아니면 가지를 말라는 말이 있다. 불행하게도 그런 이들에게 새로운 길, 새로운 창조는 없다. 항상 누군가가 먼저 간 길, 먼저 시도해서 검증된 방식만이 있을 뿐이다.
2.
역대 대통령 중 엄한 아버지 상에 가장 근접한 사람은 박정희와 전두환이다. 이승만 역시
한때는 그에 못지 않은 권위를 향유하던 대통령이었으나, 그의 노년은 강한 권위를 가진 아버지라기 보다는 늙어 심술만 가득한 심술쟁이할아버지에
가까웠다. 전두환은 엄하기만 한 반면에 무지(식)하다는 씻을 수 없는 약점이 사전에 노출됨으로써 많은 사람의 혐오감정으로 인하여 그리 효과적인
통치력을 발휘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박정희는 교활하여 자신의 부정적인 모습을 철저히 숨겨왔고, 그것이 노출될 가능성을 강한 폭압적 방법으로 억제해 왔다. 더구나 당시의 급속한 경제발전이라는 세계사적 시대상황의 도움과 함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목적지향주의적 성향으로 인해 그를 바라보는 이들에게는 매우 능력 있는 인물로 각인됨으로써 아직까지도 그의 후광을 업으려는 많은 아류 박정희를 양산하고 있고, 단지 그의 딸이라는 이유로 천박한 역사인식과 세계관, 철학의 부재 등 모든 면에서 부족하기 짝이 없는 현 한나라당 대표가 가장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로 부각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중이다.
3.
그렇다면 노무현대통령은 어떤 편인가? 편한 아버지다. 자상하지만 때론 장난스럽기까지 한
친구 같은 아버지다. 떼를 써도 받아주고, 불평 불만을 말해도 들어줄 줄 안다. 가끔 상식을 벗어나는 발상이나 행동도 거침 없이 하곤 한다.
또한 다른 자식들에게도 가능하면 많은 것들을 감독과 통제가 아닌 자율에 맡겨둔다. 이런 아버지와 함께 사는 아이들은 행복하다. 거침이 없고
자유로우며 창의적인 사고를 가지게 된다.
그러나 규격화된 환경에서 틀에 갇혀 살던 이들에게 이는 곧 혼란이다. 정리되지 않은 어지러움에 불과하다. 카리스마가 없고, 무능하기까지 하다. 그들의 그런 관점을 바꾸려면 상당한 시간과 반복된 경험이 필요하다. 그러나 많은 경우 현실상황은 그러한 시간적 여유를 부여하지 않는다.
4.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선택의 여지가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우선 보여주고 설득해야
한다. 자율적, 창의적 사고가 개인의 발전에 필수 요소라는 것을. 통제를 푸는 것, 속박을 걷어내는 것이 혼란과 무질서를 야기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개인의 자유를 확장하고 궁극적으로는 공익을 향하는 세련된 시스템을 완성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것을. 아울러 그것만이 상위와 하위,
혹은 상층구조와 하층구조 모두가 상생하는 길이란 것을. 이러한 민주적 리더십이야말로 궁극적으로 이 사회를 단계적으로 업그레이드시키기 위한 최선의
길이란 것을...
그러기 위해서 단순히 구호에서만 그치지 말고 사회 전반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왜곡된 부분의 해소를 위한 과감한 행동이 있어야 한다.
우선, 부동산 대책 더욱 강력히 시행하여 아파트값을 비롯한 부동산 가격의 폭등으로 인한 불로소득을 차단하고, 실수요자의 접근을 가능하게 해야 한다. 공급 부분의 문제 해결도 필요하지만, 투기적 가수요의 사전차단이 시급하다. 이것은 매우 커다란 파급효과를 보일 것이다.
또한 사학법을 비롯한 개혁입법을 밀고 나가야 한다. 술이나 된장처럼 장기간 숙성시킨다고 좋을 것이 하나도 없는 것들이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 법이다. 할 수 있을 때 해치워라. 국민 대다수의 공감이 있을 때는 좀 더 과감해질 필요가 있다.
그리고 한미FTA 반대하는 측의 의견을 경청하라. 아무리 옳은 정책이라도 찬성보다 반대자가 더 많다면 그들의 의견에 귀 기울여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 일이다. 더구나 정책 추진 과정이 졸속으로 이루어졌다면 더 말할 필요가 없다. 문제점 많은 정책을 관철시키려면 반대하는 이들을 설득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을 보여야 한다.
대북송금 특검에서 시작하여 이라크 파병 건, 부안 핵 폐기장 건, 평택 미군기지 이전 건 까지... 어디 이것들만인가?
주저앉아 한탄할 시간 없다. 나의 진심을 몰라준다고 야속해하지 말라. 매스컴의 적극적 협조야 애초부터
기대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 정부나 여당 스스로 나서서 알리고 설득하고 수렴해야 한다. 제발 좀 알려라. 좋은 일 해놓고도 장 속에 묻어 썩히는
어리석음을 보이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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