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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더러 진달래꽃을 노래하라 하십니까

이 가난한 시인더러 그 적막하고도 가녈픈 꽃을

 

이른 봄 산골짜기에 소문도 없이 피었다가

하로 아침 비바람에 속절 없이 떨어지는 그 꽃을

무슨 말로 노래하라 하십니까

 

노래하기에는 너무도 슬픈 사실이외다

백일홍같이 붉게 붉게 피지도 못하는 꽃을

국화와 같이 오래오래 피지도 못하는 꽃을

모진 비바람 만나 흩어지는 가엾은 꽃을

노래하느니 차라리 붙들고 울 것이외다

 

- 박팔양, 봄의 선구자 진달래를 노래함 中 -

 

 

내 기억 속의 봄 산은 진달래 산이었다. 이른 봄이 오면 형과 누나가 학교에 가고 난 후, 강아지를 발 뒤꿈치에 달고 걷던 뒷산 오솔길도, 야트막한 야산 산마루에 올라 바라보던 산줄기 양지 언덕에도 분홍빛 진달래가 수놓고 있었다.

 


진달래는 먹는 꽃
먹을수록 배고픈 꽃

한 잎 두 잎 따 먹은 진달래에 취하여
쑥바구니 옆에 낀 채 곧잘 잠들던
순이의 소식도 이제는 먼데

예외처럼 서울 갔다 돌아온 사나이는
조을리는 오월의 언덕에 누워
안타까운 진달래만 씹는다

진달래는 먹는 꽃
먹을수록 배고픈 꽃

 

- 조연현, 진달래 - 

 

 

4.19를 한 주 앞 둔 지난 주말 강화 혈구산을 찾았다. 고비고개를 지나는 도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한 고려산은 인파로 북적이지만, 혈구산은 한적하기만 하다.

 

혈구산(穴口山)은 인천시 강화군 선원면, 불은면, 내가면에 위치하며 해발 436m 이다. 이 산은 혈굴산, 설구산 또는 열구산 이라고도 하던 산으로 강화 중심부에 자리하고 있으며 상고시대에는 강화 옛땅이름의 상징 이였으며 혈구군의 주산으로 정치, 경제, 군사의 중심지로 상고시대에는 삼신수혈사상의 요람지로 '굼산' 또는 '감산'이라 하여 신성시하였으며 주민으로부터 숭앙의 대상이었다고 한다. 

 

제3봉에서 혈구산 정상에 이르는 능선의 왼편으로는 진달래가 군락을 이루어 이맘 때면 분홍빛 장관을 연출한다. 

 

 

 


눈이 부시네 저기 난만히 묏등마다

그날 쓰러져간 젊은같은 꽃사태가

맺혔던 한이 터지듯 여울여울 붉었네

 

그렇듯 너희는 지고 욕처럼 남은 목숨

지친 가슴위엔 하늘이 무거운데

연연히 꿈도 설워라 물이 드는 이 산하

 

 - 이영도, 진달래 -

 

 

70년대 후반, 대학가에서는 4.19 학생혁명을 추모하며 이 시를 노래로 만들어 불렀다. 내가 대학 입학 초기에 술자리에서 선배들로부터 배운 노래이기도 하다. '그렇듯 너희는 지고, 욕처럼 남은 목숨'으로 이어지는 2절 첫 가사에서는 살아있는 것조차 치욕스러웠던 당시 척박한 현실을 처절하게 보여준다. 

 

진달래는 척박한 우리 민족 한의 역사와 정서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영화 '남부군'에서는 산으로 몰린 빨치산들이 먹을 것이 없어 진달래를 따먹는 장면이 애처롭게 그려지기도 했다.

 

 

들머리를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 본 건너편 고려산 정상

 

 

 

능선을 향해 나 있는 오솔길은 어느새 진달래로 정겹기만하다.

 

진달래만큼은 아니지만 곳곳에서 볼 수 있는 노란 생강나무 꽃 

 

 

 

 

 

 

이 땅, 이 산하가 현대사의 비극인 한국전쟁과 혼란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있는 동안에도 봄이면 어김없이 진달래가 이 척박한 산과 들을 진분홍 빛으로 수놓았었다. 시인 신동엽 님은 전쟁의 참상 그 사이에 피어난 진달래 꽃을 이렇게 그렸다.

 

 

길가엔 진달래 몇 뿌리

꽃 펴 있고,

바위 모서리엔

이름 모를 나비 하나

머물고 있었어요.

 

잔디밭엔 장총(長銃)을 버려 던진 채

당신은

잠이 들었죠.

 

햇빛 맑은 그 옛날

후고구렷적 장수들이

의형제를 묻던,

거기가 바로

그 바위라 하더군요.

 

기다림에 지친 사람들은

산으로 갔어요

뼛섬은 썩어 꽃죽 널리도록.

 

남햇가,

두고 온 마을에선

언제인가, 눈먼 식구들이

굶고 있다고 담배를 말으며

당신은 쓸쓸히 웃었지요.

 

지까다비 속에 든 누군가의

발목을

과수원 모래밭에선 보고 왔어요.

 

꽃 살이 튀는 산허리를 무너

온종일

탄환을 퍼부었지요.

길가엔 진달래 몇 뿌리

꽃 펴 있고,

바위 그늘 밑엔

얼굴 고운 사람 하나

서늘히 잠들어 있었어요.

 

꽃다운 산골 비행기가

지나다

기관포 쏟아 놓고 가 버리더군요.

 

기다림에 지친 사람들은

산으로 갔어요.

그리움은 회올려

하늘에 불 붙도록.

뼛섬은 썩어

꽃죽 널리도록.

 

바람 따신 그 옛날

후고구렷적 장수들이

의형제를 묻던

거기가 바로

그 바위라 하더군요.

 

잔디밭에 담배갑 버려 던진 채

당신은 피

흘리고 있었어요.

 

- 신동엽, 진달래 산천(山川) -

 

 

 

그리고 생각난 노래 '바위 고개'. 어릴 적 어머니께서는 곧잘 이 노래를 콧노래처럼 부르시곤 하셨다.

 


바위고개 언덕을 혼자 넘자니

옛님이 그리워 눈물 납니다

고개위에 숨어서 기다리던 님

그리워 그리워 눈물납니다

 

바위고개 피인 꽃 진달래꽃은

우리 님이 즐겨즐겨 꺾어주던 꽃

임은 가고 없어도 잘도 피었네

임은 가고 없어도 잘도 피었네

 

바위고개 언덕을 혼자 넘자니

옛님이 그리워 하도 그리워

십여년간 머슴살이 하도 서러워

진달래꽃 안고서 눈물집니다

 

- 이흥렬 작사/작곡 바위 고개 -

 

 

제3봉에서 바라 본 서해 바다

 

그리고 혈구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진달래 능선

 

 

 

 

 

혈구산 정상. 불과 몇 미터 아래에는 진달래가 활짝 피었으나 약간의 고도 차이에도 정상에 가까운 붑분은 아직 봉오리인 채로 있다.

 

서쪽 퇴모산으로 이어지는 능선. 멀리 서해바다가 해무에 흐릿하다.

 

 

정상에서 내려다 본 진달래 능선

 

누가 심었을까, 개나리가 노란 꽃잎을 활짝 열었다.

 

 

 

 

퇴모산으로 가는 능선에서 눈에 띄인 큰개별꽃

 

그리고 수줍게 피어난 뫼제비꽃과

 

노랑제비꽃. 보통 노랑제비꽃은 산에서도 높은 지역에서 자생을 한다.

 

이맘 때를 꾸며 주는 조팝나무꽃

 

퇴모산을 향하는 능선길에서 뒤돌아 본 혈구산 정상 

 

 

퇴모산 정상에서 멀리 바라 본 마니산 능선

 

어느새 따가워진 봄 햇살 아래의 짧은 산행이었지만 진달래에 흠뻑 취한 하루였다.

 

그리고 나는 소월의 '진달래 꽃'을 읊조리며 박노해의 '진달래'를 떠올렸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우리다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 김소월, 진달래 꽃 -

 

 

겨울을 뚫고 왔다
우리는 봄의 전위

꽃샘 추위에 얼어 떨어져도
봄날 철쭉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이 외로운 겨울 산천에
봄불 내 주고 시들기 위해 왔다

나 온몸으로 겨울 표적되어
오직 쓰러지기 위해 붉게 왔다

내 등뒤에 꽃피어 오는
너를 위하여

 

- 박노해, 진달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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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개산은 강화도의 북서쪽 작은 섬인 교동도에 위치한 산이다. 해발 260미터로 2시간이면 산행을 끝낼 수 있어 가벼운 기분으로 산행할 수 있고 정상에서는 서해바다와 북녘땅이 내려다 보인다.  

 

강화도 창우리 포구에서 건너다 보이는 교동도 화개산 

 

창우리 선착장 옆의 넓게 펼쳐진 갯벌

 

본섬 강화도와  서쪽 위아래로 교동도와 석모도

 

여객선 주위로 어김 없이 날아드는 갈매기 

 

방금 떠나온 창우리 포구. 흰 포말 위로 갈매기가 한가로이 날고...

 

얼마 지나지 않아 눈 앞에 펼쳐지는 교동도 포구 옆의 긴 갯벌 

  

교동면사무소 옆으로 나 있는 산행로 

 

 

대략 삼십여분의 산행으로 전망 좋은 능선길에 이르렀다. 눈 앞에 펼쳐지는 들판은 간척사업으로 조성된 농지라고 한다.

 

 

봄햇살이 따사로운 곳에 피어난 산자고. 보통 4~5월에 피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날이 따뜻해서인지 좀 이른 것 같다. 

 

정상 가까이에 있는 화개산 봉수대 

 

인적이 많지 않은 호젓한 오솔길 

 

화개산 정상에서 바라 본 북녘. 맑은 날에는 황해도 연백이 눈 앞에 잡힐 듯 보인다고 하는데, 오늘은 해무로 시야가 그리 좋지는 않다. 

 

서쪽

 

동남쪽 

 

 

고구리 저수지

 

화사하게 피어난 생강꽃. 산수유와도 비슷하지만 꽃자루가 짧아 더 소담스럽게 보인다. 

 

 

이제 막 피어나기 시작한 아기 진달래

 

누구의 손길일까?

 

남쪽의 석모도

 

선착장으로 가는 길에 있는 교동읍성 

 

성문 주변의 일부만 남아 있고, 다른 부분들을 쌓았던 돌들은 모두 주변의 건축물들에 무단으로 사용되어진 흔적이 보인다.

 

선착장 옆의 갯벌 

 

마치 다져진 것처럼 굳다.

 

 

갈매기를 달고 들어 오는 우리가 타고 나갈 여객선

 

 

봄날 오후의 햇살이 비치는 서해바다 위로 갈매기들의 군무가 푤쳐진다.

 

내 마음 속으로는 정태춘의 '서해에서'가 흐른다.

 

눈물에 옷자락이 젖어도 갈 길은 머나먼데
고요히 잡아주는 손 있어 서러움을 더해주네
저 사공이 나를 태우고 노 저어 떠나면
또 다른 나루에 내리면 나는 어디로 가야하나

 

서해 먼 바다 위로 노을이 비단결처럼 고운데
나 떠나가는 배의 물결은 멀리멀리 퍼져간다
꿈을 꾸는 저녁 바다에 갈매기 날아가고
섬 마을 아이들의 웃음소리 물결 따라 멀어져 간다

 

어두워지는 저녁 바다에 섬 그늘 길게 누워도
갯뜰에 살랑대는 바람은 잠잘 줄을 모르네
저 사공은 노만 저을 뿐 한마디 말이 없고
뱃전에 부딛치는 파도소리에 육지 소식 전해오네

 

그렇게 교동도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창우리 선착장. 

 

봄날 따사로운 햇살을 등에 지고 다녀온 교동도. 서해바다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의 시원함을 느끼며 행복함에 젖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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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1,577 미터의 계방산은 한라, 지리, 설악, 덕유산에 이은 남한에서 다섯 번째로 높은 고봉이다. 정상에 오르면 백두대간 등줄기를 한눈에 볼 수 있어 인근에서는 최고의 전망대로 손꼽히는데 북쪽으로 설악산, 점봉산, 동쪽으로 오대산 노인봉과 대관령, 서쪽으로 회기산과 태기산의 능선들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또한 이산에는 각종 약초와 야생화가 자생하고 있으며, 특히 산삼이 유명하고, 회귀목인 주목, 철쭉나무들이 군락을 이루며 자라고 있는 곳으로 산세가 설악산 대청봉과 비슷하다.

 

오늘 산행은 정상과는 고도차가 480 여 미터에 불과한 해발 1,089m의 운두령을 들머리로 하여, 정상을 지나 동남쪽 계곡을 따라 내려가면 만나게 되는 제2야영장을 날머리로 하는 경로이다.

 

 

 

날씨가 화창해서인지 북적이는 산행객들로 들머리는 마치 에스컬레이터를 방불케 한다. 

 

능선에 올라서니 산행객들의 발길을 벗어난 곳엔 꽤 깊은 눈이 쌓여 있다.

 

멀리 서북쪽으로 홍천의 응봉산과 아미산 산줄기가 보이고 

 

서남쪽 가까이로는 회령봉이 지척이다. 

 

삽주 같기도하고...아닌가? 

 

1492봉에 오르니 계방산 정상에 앞서 오른 산행객들이 빼곡하다.

 

서쪽 능선은 주목 보다는 신갈나무 같은 참나무 종류의 나무들이 많다.

 

동남쪽으로 멀리 보이는 용평 스키장과 노인봉, 옥녀봉 

 

돌탑이 있는 계방산 정상도 수많은 산행객들로 북적인다.

 

방금 지나 온 서쪽 줄기인 1492봉이 저 아래로 보인다.

 

오른 편의 대관령과 중앙 조금 왼 편의 선자령 풍차들 

 

  

가까이 끌어 본 대관령과 선자령. 눈 쌓인 능선 너머로 풍차가 희미하다. 

 

좀 더 분명해지는 풍차들

 

 

용평 스키장도 선명하게... 

 

북쪽으로 멀리 설악산 대청봉이 우뚝 솟아 있다. 

 

 

하산길은 계곡길이라서 경사가 꽤 가파르고 쌓인 눈도 깊어 조심스럽다.  

 

 

 

야영장 날머리 근처의 쭉쭉 뻗어 올라간 낙엽송 숲 

 

계곡은 꽤 두터운 얼음으로 덮여 있다. 

 

제2야영장을 나와 예약해 둔 음식점으로 향했다.

 

 

 

좀 이른 저녁이지만 시장기에 허겁지겁 게 눈 감추듯 해치운 송어회 

 

오늘 산행은 햇살이 강하고 바람이 없어 정상 부근에서도 기대했던 상고대를 보지 못한 것이 다소 아쉽긴 했지만, 맑은 햇살 아래 눈 덮인 능선들의 시원한 조망으로 충분히 만족할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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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백산은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 순흥면과 충청북도 단양군 가곡면 경계에 있는 산으로 주봉은 해발고도 1,440 미터의 비로봉이다. 도솔봉(1,314m)을 시작으로 제1연화봉(1,394m), 제2연화봉(1,357m), 국망봉(1,421m) 등이 연봉을 이루고 있다.

 

남동쪽 사면은 급경사를 이루며, 낙동강의 지류인 죽계천이 발원한다. 북서쪽에는 완경사의 고위평탄면이 나타나며, 남한강의 지류인 국망천이 발원한다. 연화봉으로 이어지는 남서쪽 능선에는 주목군락(천연기념물 제244호)이 절경이며, 6월에는 능선을 따라 철쭉이 만개하여 장관을 이룬다.

 

 

오늘 산행은 삼가리 주차장을 들머리로 하여 비로사를 지나 비로봉 정상에 오르고, 주목군락지를 통과하여 연화봉 북쪽의 계곡길을 따라 천동을 날머리로 하는 경로이다.

 

 

정상에서 해맞이를 하기 위한 시간 계산이 있었으므로, 하늘엔 "유리세공품 같은"(이외수 님 표현 쌔벼 옴) 밤별들이 쏟아질 듯 반짝이고 있으나, 주변은 한 치 앞을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어두운 새벽길을 출발하였다.

 

 

 

 

 

 

자칫 표지판이 없었으면 그냥 지나쳐 버릴만큼 어두운 가운데 비로사의 일주문을 지나고 

 

잔설이 조금은 남아 있는 밤길을 오른다. 숲 위로는 마치 한 여름밤 파도 소리 같기도 하고, 폭우가 그친 후 성난 계곡 물소리와도 같은 세찬 바람 소리가 쉼 없이 귓전을 울리고 있다.

 

이윽고 랜턴이 필요 없을만큼 날이 밝았고, 

 

정상 가까이의 능선들이 희뿌연하게 밝아올 무렵 

 

동녘이 오렌지 빛으로 찬란히 물들어 온다. 야간 산행의 묘미를 느낄 수 있는, 가슴이 벅차 오르는 순간이다. 이 맛에 밤길을 오른다.

정상을 몇 백 미터 앞 둔 지점이었으나 조망이 좋아 바람 세찬 정상보다는 이 곳에서 해를 맞기로 하였다.

 

오렌지 빛 하늘 아래 시커먼 어둠을 뚫고 작은 불덩어리가 치솟는 듯하더니

 

 

 

 

 

아침 해가 말간 얼굴로 어둠을 헤친다. 

 

마치 파도가 일렁이는 너른 바다 속에서 솟아 오르는 것 같은 아침 해를 벅찬 감동으로 맞았다.

  

아침 햇살 아래 빛나는 바람 세찬 정상 

 

멀리 국망봉이 희뿌연 운무 속에 어둠을 털어내고 있다. 그 뒤로 짙은 운무...

 

 

정상 부근의 상고대가 기대를 져버리지 않고 반겨 준다. 

 

이젠 모든 산줄기들이 아침 햇살 아래 잠에서 깨어나고

 

정상에서 국망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엔 아직 인적이 없다.

 

 

비로봉 정상. 몸이 흔들릴 정도의 세찬 바람에 쌓인 눈이 모두 날려 버린 듯하다.

 

중앙 왼 편의 제1연화봉과 바로 뒤 소백산 천문대, 그리고 중앙 멀리 제2연화봉이 통신탑과 함께 희미하다.

 

계단 지주와 밧줄에 맺힌 상고대가 마치 장식처럼 보인다. 

 

 

 

 

아침 햇살을 배경으로 상고대로 장식한 작은 관목들이 꿈결 속에 서 있는 듯하다.

 

 

어린 주목 군락과 잎을 장식한 상고대. 뒷편으로 보이는 비로봉 정상에는 여전히 바람이 세차다.

 

 

 

 

시린 손과 발을 느낄 수도 없을 만큼 내 마음과 눈은 황홀경에 빠져 있다. 이런 장면을 몇 장 사진에 옮긴다는 것이 지나친 욕심임을 실감하게 된다. 

 

이제 산줄기들의 윤곽이 좀 더 분명해진다. 먼 능선들은 짙은 운무에 동양화 같은 분위기를 보여 준다.

 

연화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아쉬움을 뒤로한 채 연화봉을 우회하여 천동으로 내려가는 길로 들어섰다.

 

어른 품으로 두 아름은 됨직한 주목

 

 

 

마치 누군가가 작품으로 설치해 놓은 듯한 살아 천 년, 죽어 천 년을 간다는 주목. 하기는 자연의 이뤄놓음을 누가 따라갈 수 있을까.

 

 

 

 

 

북서쪽 사면은 아직도 햇살이 이르지 못했다.

 

 

 

멀리 산 아래 쪽은 짙은 운무에 잠겨 있다. 예서 멀지 않은 신선봉에서의 환상적인 운해에 취했던 기억이 새롭다.

 

 

 

 

얼어 붙은 계곡 사이로 흐르는 물에 달아오른 발을 잠시 담그고...^^ (5 분을 넘기기 힘들었다) 

 

 

 

허영호 기념비가 서 있는 소백산교를 지나 단양으로 향한다.

 

 

단양 8경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히는 도담삼봉. 아쉽게도 수위가 매우 낮아 기대했던 그림은 나오지 않는다.

 

소백산은 설악산, 오대산, 덕유산, 태백산, 지리산 등과 함께 겨울 산행지에 반드시 꼽히는 겨울 경관이 아름다운 산이다. 이번 산행은 예상했던 것 보다도 날씨가 좋아 대단히 만족스런 경관에 흠뻑 취할 수 있었다. 아마도 내년 철쭉 필 때쯤에나 다시 오게 될 것 같다. 안녕 소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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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산은 예로부터 개성의 송악산, 파주의 감악산, 포천의 운악산, 가평의 화악산과  더불어 경기 5악의 하나로 불리었다고 한다. 본시 산 이름에 악(岳) 자가 들어가면 바위가 많고 산세가 험하다고 하는데 관악산 역시 다르지 않다.

 

한편 관악산은 화산(火山)이라 하여 조선 태조 이성계가 한양에 도읍을 정할 때 화기(火氣)를 끄기 위해 경복궁 앞에 해태를 만들어 세우고, 이 산의 중턱에 물동이를 묻었다고 전해지며, 산 정상 부근에 연주사와 원각사 두 절을 지었다고 한다.

 

오늘 산행은  과천 정부종합청사에서 과천향교를 지나는 길을 들머리로 하였다. 계곡길이라서 조망이 그리 좋지 않고 중간중간에 경사가 있는 편이나 아기자기한 맛은 있다.

 

 

 

과천 향교 옆의 계곡길이 오늘 오르게 될 경로이다. 

 

목교와 함께 중간중간에 나무계단과 돌계단을 꽤 자주 만나게 된다.

 

들머리에서 정상 연주대까지는 불과 4km에 미치지 못한다.

 

이어지는 돌계단길과  

 

계곡 바위 길

 

중간중간에 나무 계단과 돌계단이 꽤 길게 있어 거리가 멀지 않음에도 다소 지루한 감을 준다.

 

그리 오래지 않아 연주암의 대웅전 마당에 이르렀다.

 

연주암 경내에도 근교산 답게 산행객들로 북적인다.

 

 

 

연주암을 지나 정상으로 가는 길에 보이는 연주대의 모습이다. 아슬아슬한 절벽 위에 제비집처럼 지어진 연주대는 관악산을 오르는 대부분의 등산로가 집결하는 곳이다. 등산로에 전망대를 만들어 놓아 조망이 좋아졌다.

 

연주대는 신라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관악사와 함께 건립하여 의상대라는 이름을 붙였다 한다. 그러나 후에 관악사는 연주암으로, 의상대는 연주대로 이름이 바뀌었는데, 속설에 의하면 조선 개국 후 고려에 대한 연민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이곳에서 멀리 개성을 바라보며 망해버린 왕조에 대해 연모했다고 하여 연주대라 불렀다는 것이다.

 

 

과천시 너머로 청계산자락이 지척이다.

 

관악산 정상. 경사진 커다란 바위가 표지석이 올려진 채 그대로 드러나 있다. 

 

 구룡산과 대모산 방향

 

한강 너머 남산과 북한산, 도봉산 등이 매연 아래 휘뿌연하다.

 

우면산과 강남, 잠실, 광진구 등

 

 

내려오는 길에 돌아 본 기상관측소와 연주대

 

무너미고개에서 바위 능선을 타고 정상으로 가는 길

 

아쉬움에 다시 한 번 올려다 보고는

 

저녁 햇살을 등지고 하산하였다.

 

눈이 없는 겨울 관악산은 아마도 처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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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유산은 전라북도 무주군, 장수군과 경상남도 거창군·, 양군에 걸쳐 있는 산이다. 높이는 1,614m로 북덕유산이라고도 하며, 소백산맥의 중앙에 솟아 있다. 주봉인 향적봉과 남서쪽의 남덕유산(1,594m)을 잇는 능선은 전라북도와 경상남도의 경계를 이룬다.

 

이 능선을 따라 적상산, 두문산, 거칠봉, 칠봉, 삿갓봉, 무룡산 등 1,000m 이상의 높은 산들이 하나의 맥을 이루고 있어 덕유산맥이라고도 한다. 산정에서 남서 방향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완만하며, 북동쪽 사면에서 발원하는 원당천은 깊은 계곡을 흘러 무주구천동의 절경을 이루며 금강으로 흘러든다.

 

구천동계곡이 끝나는 지점에 있는 백련사는 신라 때 세워졌으며, 임진왜란과 6.25 전쟁 때 소실되어 재건된 것이다.

 

서울에서 자정 무렵에 출발하여 새벽 세시 반쯤 덕유산 주차장에 도착한 후 간단하게 아침 식사를 하고, 네시 반부터 산행을 시작하였다.

 

주차장에서 백련사까지 구천동 계곡을 따라 나 있는 약 6.5km 가량의 임도를 걸어 올라간 후, 백련사를 지나며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 된다. 하늘에 별이 총총 떠 있고, 눈이 쌓여 있지만 헤드랜턴 없이는 걷기가 쉽지 않을 만큼 어둡다.

 

한참을 올라가니 동쪽 산 능선이 붉은 빛으로 물들어 온다. 

 

이제 구름 사이로 아침 해가 떠오르고, 

 

아침햇살이 쌓인 눈을 물들인다. 

 

정상을 향하여 오를 수록 눈의 두께는 두터워진다. 

 

 

나무가지 위에 쌓인 눈들이 마치 솜뭉치를 얹어 놓은 듯 탐스럽고 푸근하게 느껴진다. 

 

 

 

 정상 가까이에 이르니 눈꽃과 함께 가지마다 상고대가 화려하다.

 

향적봉 대피소에 이르러 돌아 보니, 내리는 눈과 짙은 구름으로 먼 능선들은 고사하고 불과 몇 백 미터 앞도 보이질 않는다. 

 

대피소에서 향적봉 정상으로 오르는 길도 눈꽃이 장관이다. 

 

 

 

 

눈꽃과 상고대 

 

이제 대피소가 저 아래에서 흐릿하다. 

 

나무계단을 따라 보이는 덕유산의 주봉인 향적봉 정상 표지판 

 

바람이 세찬 탓에 쌓인 눈은 깊지 않다. 

 

향적봉 정상에 섰지만 시야가 가려 장쾌한 능선의 멋은 포기해야 했다.

 

 

 

이제 눈꽃과 상고대 사이를 걸어 하산이다. 

 

생목과 고사목이 함께 눈꽃으로 치장한 채 서 있다.

 

 

 

 

한참을 내려와서야 어렴풋이 건너편 산 줄기가 보이기 시작한다. 

 

 

 

덕유산엔 유난히도 겨우살이가 많다.  

 

백련사 계단(戒壇). 계단은 불교의 계율을 설법하는 곳으로 백련사 계단은 신라시대에 만들어 졌다고 한다.

  

백련사에서 뒤돌아 본 부드러운 능선

 

 올라갈 때 어둠 속에서 지나쳤던 백련사.

 

천왕문 

 

  

 일주문 바로 아래 만들어져 있는 매월당 설흔 스님의 사리를 모신 부도.

 

 백련사 일주문

 

 

얼음 사이로 구천동 계곡의 맑디 맑은 물이 흐르고 있다. 

 

 산 아래는 햇살이 밝지만, 향적봉 정상은 아직도 구름에 묻혀 있다.

 

 

 동행이 찍어 준 내 사진

 

맑은 날 덕유의 흰눈 쌓인 능선을 보지 못하는 아쉬움은 있었으나, 눈꽃과 상고대를 충분히 본 것으로 만족한다. 겨울 산행은 눈이 있어야 제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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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 그 크고도 큰 산을 짧은 일정으로 휭 하니 다녀 오려니 울산바위와 권금성에 올라 주변 경치를 둘러 보는 것이 고작이다.

 

설악(雪嶽)은 눈이 덮여야 제격이다. 그러나 이번 산행은 눈이 없는 산행이었다. 그나마 내설악 쪽의 봉우리들은 흰 눈을 덮고 있어 멀리서 눈요기는 한 것으로 위안을 삼아야 했다. 

 

 

권금성은 등산로가 폐쇄되는 바람에 케이블카로 이동해야 한다. 우선은 울산바위를 다녀온 후에 오르기로 했다. 

 

아기자기하면서도 아름다운 화채능선의 정상인 화채봉과 그 앞의 노적봉 

 

우뚝 솟은 소나무 두 그루 

 

신흥사 입구의 청동대불 

 

 신흥사 사천왕문과

 

 돌담길을 지나 울산바위로 향한다.

 

신흥사 극락보전을 흘낏 보고 

 

 보면 볼 수록 웅장한 울산바위

 

사다리에는 못 미치지만 상당한 경사의 계단이 중간중간에 있는 전망대에 오르는 철계단 

 

 

멀리 화채능선과 공룡능선, 그리고 그 뒤로 우뚝 솟아 있는 중청과 대청 

 

 

 

 

몇 줌 되지도 않을 듯한 바위 틈 흙에 뿌리를 내린 소나무들 

 

울산바위에서 내려다 본 속초 앞 바다 

 

울산바위 전망대에서 보이는 황철봉

 

오른쪽 전망대와 그 보다 조금 낮은 앞 쪽의 전망대. 바람이 몹시 세차다. 

 

대청에서 흘러내리는 능선 

 

 

 

 계조암과 흔들바위

 

울산바위 건너편으로 웅장한 모습을 드러낸 채 서 있는 달마봉 

 

 전면에서 본 울산바위 전체 모습

 

신흥사 극락보전

 

권금성에 오르는 길. 5분 내외면 정상에 도착한다.

 

 권금성 바로 옆의 암봉

 

 

 그리고 그 아래로 속초까지 이어지는 길

 

 

만물상이 햇살을 등지고 서 있고, 

 

그 뒤 왼쪽부터 1275봉, 나한봉, 마등령, 세존봉, 저항령 

 

권금성 봉화대의 험악한 바위 너머로 멀리 울산바위가 보인다. 

 

봉화대  

 

 

 

 

 

 속초 앞 바다의 세찬 물결

 

 

그리고 밤.....

 

이상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이 다녀 온 설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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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봉산은 강원도 춘천시 북산면과 화천군 간동면 경계에 있는 산으로 높이 779m이다. 백치고개를 사이에 두고 부용산(882m)과 마주보고 있으며, 5개의 암봉이 줄지어 있어 오봉산이라 한다. 원래의 이름은 경운산이라고 한다.

 

산의 정상에서 산 중턱까지 급경사를 이루는데, 각각의 봉우리들은 쇠줄을 의지하여 오르고 내려야 할만큼 경사가 심한 암릉 구간이며, 남쪽 사면에서 발원한 계류는 청평사계곡을 지나 소양호로 흘러든다.

 

등산로가 끝나는 부분에 청평사가 자리하고 있는데, 청평사에는 청평사회전문(보물 제164호), 3층석탑이 남아 있으며, 입구 좌측으로는 구성폭포, 공주탕, 공주굴이 있다.

 

오늘 일정은 배후령을 출발하여 1봉 나한봉부터 2봉인 관음봉, 3봉 문수봉, 4봉 보현봉을 지나 주봉인 5봉 비로봉을 오른 후, 바위능선을 타고 청평사로 내려와 배를 타고 소양댐을 나오는 경로이다.

 

 

춘천 조금 못 미쳐 잠시 들른 강촌 휴게소에서 바라 본 북한강은 아직 짙은 안개 속에 잠들어 있다.

 

저 어두운 밤하늘에 가득 덮인 먹구름이 밤새 당신 머릴 짓누르고 간 아침

나는 여기 멀리 해가 뜨는 새벽강에 홀로 나와 그 찬 물에 얼굴을 씻고

서울이라는 아주 낯선 이름과 또 당신 이름과 그 텅빈 거릴 생각하오

강가에는 안개가 안개가 가득 피어나오

 

짙은 안개 속으로 새벽강은 흐르고 나는 그 강물에 여윈 내 손을 담그고.....

산과 산들이 얘기하는 나무와 새들이 얘기하는 그 신비한 소릴 들으려 했오

강물 속으론 또 강물이 흐르고 내 맘 속엔 또 내가 서로 부딪치며 흘러가고

강가에는 안개가 안개가 또 가득 흘러가오

 

- 정태춘, 북한강에서 -

 

배후령에서 제 1봉 나한봉까지 오르는 길은 들머리부터 경사가 꽤 심한 편이다. 

 

능선에 올라서니 소양호 방향의 산줄기는 짙은 운무에 잡겨 있다. 

 

멀리 암봉들이 줄지어 있는 모습이 한 눈에 들어 온다. 

 

 

 1봉과 2봉에 오르면 아래 양구로 이어지는 도로 위로 멀리 화천의 죽엽산, 용화산 등이 보이고 그 너머로는 대성산, 화악산 등의 고산이 어렴풋이 보인다.

 

 능선과 봉우리는 안개로부터 벗어나 밝은 햇살 아래 빛나고 있지만 산줄기 아래쪽으로는 운해가 장관이다.

 

꽤 험악한 구간인 3봉의 바위절벽이 눈 앞이다. 

 

능선 곳곳에 운해를 배경으로 우뚝 솟아 있는 고사목이 장엄하기까지 하다. 

 

쇠사슬을 매어 놓은 쇠말뚝이 오래 된 까닭인지 새로운 말뚝들을 세우는 공사가 진행 중이다.

 

바위 위에 오두마니 서 있는 한 그루 소나무로 인해 이름 붙여진 청솔바위이다. 바위 틈으로 아래쪽까지 내린 소나무의 뿌리가 경탄스럽도록 강인한 생명력을 보여준다. 

 

바위 위에 세워진 어느 산사람을 추모하는 진혼비가 마음을 숙연하게 한다. 

 

 

 

3봉과 4봉을 오르내리는 길은 경사가 꽤 심한 암릉인데, 쇠말뚝에 쇠줄이 이어져 있어 의지삼을만 하다.

 

 드디어 오봉산의 주봉인 비로봉이 이르렀다. 그리 길지 않은 코스이지만 꽤 까탈스럽다.

 

 

 이제 한낮의 햇살에 운무도 많이 걷히고 늦은 잠을 자고 있던 소양호가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방금 지나온 능선 옆으로는 수직 바위절벽이다.

 

험한 바위 틈에 잠시 뿌리를 내렸다가 고사목으로 변한 키 작은 소나무들 너머로 지나온 능선이 이어진다.

 

 

 

덩치 큰 사람은 빠져나가기가 수월하지 않을만큼 틈이 작으면서도 경사가 심해 나름 애를 먹이는 홈통바위 

 

바위 기슭 위에 우뚝 솟아 있는 낙락장송에서 지나온 세월의 무게를 본다. 

 

마치 허공을 향해 무엇인가를 갈구하는 듯한 모습도... 

 

이제 소양호는 완전히 운무에서 벗어나 밝은 햇살에 빛나고 있다. 

 

이제 아스라이 멀어진 능선 

 

그리고 더욱 가까워진 소양호

 

그 후로도 바위능선은 산의 중턱까지 이어진다. 

 

 

 

 

 

 그리 위태하지 않은 바위 구간을 지나면

 

 완만한 경사의 오솔길

 

당 태종의 공주와 그를 흠모하다가 죽어 구렁이가 된 어느 평민 청년의 전설이 얽혀 있는 청평사 회전문

 

 

 

 

 

청평사 앞으로 이어진 진입로. 꽤 운치가 있다. 

 

 

 

 

 그리고 구성폭포.

 

구성폭포 바로 아래에 있는 공주굴 

 

 

 소양댐으로 나가는 배를 타는 선착장

 

 

 

  

 

자꾸만 아쉬워 뒤를 돌아 보게하는 곳, 소양호

 

 

 

춘천에 갈 때마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들르는 막국수 집이다. 평양냉면과 막국수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지만, 막국수 중에서는 이 집 막국수가 내 입맛에는 제일이다. 

 

 벼가 베어지고 난 마른 논에 볏짚단이 을씨년스럽다.

 

좀 더 시간 여유가 있었으면 청평사를 좀 더 둘러보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한 것이 다소 아쉽다. 그리고 단풍이 이미 질 때가 됐긴 하지만, 이 곳 오봉산도 다른 곳과 다르지 않게 제대로 물들지 못하고 말라버린 것을 보니 올 가을 가뭄이 꽤 심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년에는 보다 운치 있는 소양호의 가을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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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암산은 내장산 국립공원에 속해 있으며 해발 741m의 상왕봉을 최고봉으로 내장산 줄기와 맞닿아 있다. 백암산에서 뻗어내린 백학봉은 해발 630m의 거대한 바위봉우리로 그 형태가 멀리에서 보면 백학이 날개를 펴고 있는 모습과 같다 하여 '백학봉'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한다.

 

백양사는 다른 지역의 단풍보다 잎이 작고 색깔이 고운 당단풍(애기단풍)이 많은데, 내장사처럼 단풍터널을 이루도록 크지는 않다.

 

서울에서 자정이 좀 지나 출발하여 백양사 주차장에서 아침을 먹고 새벽 여섯 시부터 산행을 시작하였다. 늦가을 새벽 여섯 시의 산길은 랜턴 없이는 쉽지 않을 만큼 어두웠다.

 

오늘 산행은 백양사를 지나 약사암 - 영천굴 - 학바위 - 백학봉 - 상왕봉 - 운문암을 지나 다시 백양사로 내려오는 경로이다. 

 

 

단풍나무 가지가 늘어진 오르막길을 가다 보니 

 

어느새 동녘에는 여명이 비치기 시작한다. 

 

어둠에 묻혀 있던 능선도 서서히 잠에서 깨어나고 있다. 

 

고요 속에 잠겨 있는 학바위 절벽 아래 약사암 

 

영천굴로 올라가는 비탈길에 어둠 속에서도 단풍이 붉다. 

 

 영천굴 안의 관음상

 

 학바위에서 내려다 본 단풍 숲. 밝은 햇살 아래가 아닌데도 색깔이 화려하기 그지 없다.

 

먼동이 터오는 하늘을 배경으로 우뚝 솟아 있는 방금 지나온 학바위 

 

멀리 백양사도 이제 막 어둠을 털어내고 있다. 

 

 

가파른 비탈길을 가쁜 숨을 몰아쉬며 오른 끝에 드디어 백학봉이 손에 잡힐 듯이 다가왔다. 

 

 상왕봉 너머로 멀리 사자봉이 보인다.

 

구름이 낮아 능선에서 오르는 일출은 보지 못했지만 나뭇가지 사이로 이제 막 아침 해가 햇살을 뿌리고 있다. 

 

백학봉에서 돌아 본 능선. 어둠은 모두 걷혔다.

 

선홍빛 물감으로 �을 들인 듯 빨간 나뭇잎

 

워낙 가물었던 탓인지 빛깔이 별로 곱지 않은 청미래 열매

 

 백학봉에서 상왕봉으로 가는 능선은 경사가 완만하며 주변 다른 산들에 대한 조망이 좋다.

 

 별로 크진 않지만 오랜 풍파 속에 기품이 느껴지는 벼랑 위의 소나무 한 그루

 

백암산의 주봉인 상왕봉 정상  

 

 멀리 내장산 봉우리들이 안개 속에 떠오른다.

 

 

그리고 발 아래 산자락의 붉은 빛깔이 마치 물감을 흘려 놓은 듯하다. 

 

 구름 속에 가리워 있던 햇살에 빛나는 능선들을 둘러 보고 하산 길에 접어 들었다.

 

 

 

 

산 정상 부분에는 가을 가뭄에 바싹 말라 있던 단풍들이 아래로 내려갈 수록 제 색깔을 보인다. 과연 명불허전이다.

 

 한 때는 그 위용이 대단했을 것 같은 나목과

 

 어른 품으로 두 아름은 족히 돼 보이는 비자나무

 

선홍빛 단풍 위로 우뚝 솟아 있는 백학봉의 흰 벼랑

 

 

나라에 재앙이 발생했을 때 국태민안을 기원하며 제를 지냈다고 전해지는 국기단(國祈壇) 옆의 거대한 은행나무가 황금빛으로 눈부시다.

 

연륜이 묻어 나는 커다란 단풍나무 

 

백학봉이 그 위용을 보다 분명히 드러낸다.

 

 

 

 

 

 

말로써, 글로써 표현이 필요 없는 아름다움이다. 단풍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은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라는데.... 

 

 

사천왕이 눈을 부릅뜨고 지키고 있는 사천왕문을 지나 백양사 경내로 들어섰다.

 

대웅전 지붕 위로는 백학봉이 손에 잡힐 듯하다. 

 

 

연못에 떠 있는 쌍계루와 백학봉 

 

 

 

 

인적이 없는 새벽길과 다르게 북적거리는 일주문에서 본당에 이르는 단풍길 

 

 

백양사 일주문

 

백암산은 내장산과 인접해 있지만 단풍의 화려함을 제외하면 소박하고 아기자기한 맛이 있어 내장산과는 또 다른 느낌을 준다.  내려오는 차 안에서 눈을 제대로 붙이지 못했지만 그리 피곤함을 느낄 겨를도 없이 산행을 마쳤다. 아마도 눈에 차는 풍광들의 아름다움이 피로를 모두 앗아간 듯하다.

 

이 가을날 내 눈의 호사가 여운을 꽤 길게 남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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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봉산은 팔당댐 부근에서 한강을 사이에 두고 남쪽의 검단산과 마주보고 있다. 해발 고도가 683 미터로 건너편 검단산(685 미터)과 비슷한 높이이다. 적갑산, 갑산, 운길산 등과 능선으로 이어져 있으며, 북한강과 남한강, 두물머리 등에 대한 조망은 검단산보다도 나아 보인다. 서쪽으로의 한강줄기 또한 조망이 좋다.

 

오늘 산행은 덕소에서 도곡리까지 버스로 이동한 후 도곡리 들머리에서 인적이 드문 갑산과 세재고개 및 약수터를 지나 적갑산, 철문봉을 거쳐 예봉산 정상이 이르른 후 팔당역을 날머리로 하여 하산하였다. 거리는 12 ~ 13 km 가량이 된다고 한다.

 

 

열한 시가 가까웠음에도 산등성이는 안개에 흐릿하다. 

 

고마리 

 

산국 

 

쑥부쟁이 

 

그리고 이름 모를 마른 꽃 

 

능선에 이르렀을 때까지 안개는 걷히지 않아 한강의 조망이 조금은 우려스럽다. 멀리 예봉산 정상이 흐릿하게 보인다. 

 

인적이 드문 낙엽 쌓인 오솔길을 걸어 

 

갑산에 이르렀다. 아직은 산객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까닭에 정상 표지석도 없다. 

 

예봉산 산마루는 좀 더 가까워졌다. 

 

노란 빛깔로 화사한 이고들빼기 

 

 

가을 가뭄이 심해서인지 단풍이 제대로 물들지 못하고 말라 버렸다. 9월 중순 쯤 설악산을 다녀 온 어떤 이가 금년 단풍은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말을 했던 것이 기억난다. 

 

적갑산 정상

 

적갑산 정상을 지나 예봉산으로 가는 길에 있는 전망대에서 건너다 본 하남시 

 

 

서쪽으로 굽이지며 돌아가는 한강을 따라 덕소의 아파트 숲이 있고, 그보다 멀리에 구리시가 보인다. 조금 더 강을 따라 시선을 옮기면 아차산과 용마산이 누워있다. 

 

철문봉 정상을 지나고 

 

억새가 피어 있는 작은 공터. 눈 앞에 예봉산 정상이 보인다. 

 

건너편으로는 검단산과 또 다른 용마산의 뾰족한 봉우리가 보인다.

 

왼쪽의 예봉산과 건너편의 검단산 

 

억새 숲길을 지나 

 

예봉산 산마루에서 바라본 한강. 앞에 보이는 산자락이 붉게 물들어 있다. 중앙의 구리시 뒷편으로 북한산까지 훤히 보인다.

 

바로 앞 쪽에서 가로로 흐르는 북한강과 중앙에서 합류하는 남한강, 그리고 두 강이 만나는 두물머리 

 

당겨 본 두물머리. 가까운 쪽 다리 끝나는 부분 바로 위쪽에 물 가에 서 있는 커다란 느티나무가 어렴풋이 보인다.

 

 

팔당대교와 검단산, 그리고 하남시. 바로 아랫쪽 산자락의 붉은 빛이 짙다. 

 

검단산과 용마산

 

붉은 빛의 산자락 너머로 팔당호까지 두루 둘러보고는 하산하였다.

 

검단산에 비해 예봉산은 바위가 겉으로 드러나 있지 않은 육산이다. 산길이 아기자기하고 예쁘며 산 주위로 펼쳐져 있는 경관이 장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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