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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심리학자들은 사람의 태도를 구성하는 요소로 지식, 정서, 의지 세가지를 든다. 그 중 지식이라고 하는 것은 취하는 정보의 내용에 의해 쉽게 변하는 것이고, 의지 또한 어느 정도는 지식을 바탕으로 한 스스로의 통제에 따른다. 반면 정서라는 요소는 지식과 의지가 바뀐다 해도 쉽사리 변하지 않는다.

즉, 어떤 대상에 대한 태도변화에 있어서 가장 많은 시간과 노력이 요구되는 요소가 바로 이 정서란 놈이다.

아마 여러분들도 수시로 경험할 것이다. 특정인에 대한 오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온갖 정성과 열의로 설득을 하고는 이제는 변하겠지 하는 기대를 해보건만 돌아오는 대답은 "난 그래도 싫어. 무조건 그 사람 싫어." 하는 거... 여기서 '무조건 싫다'는 것은 대부분 이미 형성된 정서에 바탕한 태도이다.

물론 그런 경우 시간이 해결해주는 경우도 있다. 왜냐하면 정서라는 것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농도가 옅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경우, 사람들은 자신이 새롭게 얻은 정보와 자신이 유지하고 싶어하는 태도가 불일치할 때, '인지부조화'를 경험하게 된다. 인지부조화란 서로 다른 인지 요소가 상충함으로써 심리적 불편감을 느끼게 되는 경우를 말하는데, 이렇게 되면 그는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두 요소 중 어느 한 가지를 왜곡하게 된다. 이때 왜곡은 종종 변화가 쉬운 요소 즉, 새롭게 얻은 정보를 향하게 된다.

황박사를 신뢰하고, 그의 성공을 간절히 기대했던 사람들이 그가 저지른 잘못된 행위들을 목도하면서도 그에 대한 태도에 커다란 변화를 일으키기 보다는 태도변화 폭을 최소로 하면서 새롭게 얻게 된 정보의 내용을 왜곡하거나 새로운 방어논리를 생산해 내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경우 태도변화는 매우 더디게 진행되며, 경우에 따라서는 오히려 더욱 강고한 방어논리로 무장하여 그에 반하는 어떠한 정보도 거부하거나 왜곡하게 된다.

정작 우리가 경계해야 할 부분은 바로 이런 정보의 왜곡과 무리한 방어논리에 수반되는 비합리성이다. 대부분의 음모론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문제해결은 지나친 감정적 흥분상태에서보다는 냉정하고 합리적인 이성의 힘에 의지할 때 비로소 가능해지는 이유가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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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의식하지 못한 채 지내던 이명(耳鳴)이 어젯밤부터 문득 다시 찾아왔다. 때로는 한 여름 녹음 속에서 짝을 부르며 기운차게 울어대는 왕매미와 참매미 소리처럼, 때로는 가을 밤 달빛 아래에서 끊어질 듯 이어지는 귀뚜라미 울음처럼...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해소될 것으로만 알았던, 군 시절 90mm 무반동총 사격 때마다 느꼈던 일시적 난청 상태와 통증이 원인일까? 아니면 흔히 노이로제 증상과 함께 나타나는 신경성적 증후일까?

주변이 고요할수록 이명은 더욱 선명하고 뚜렷하게 들려오지만, 오늘 아침에는 지하철의 시끄러운 소음 속에서도 안내방송조차 묻어버릴 만큼 우렁차게 들려왔다.

어젯밤 잠자리에 누워 보던 한겨레21에서 어린아이들의 죽음에 대한 기사가 눈길을 사로잡은 채 놓아주질 않았다.

이제 아홉 살인 한 아이는 비닐하우스 안에서 방치되다시피 한 삶을 살아가던 중 기르던 개에 물려 짧은 삶을 마감하였다. 그 순간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무서웠을까? 그의 사정을 알고 딱하게 생각하여 여러 조치를 취하던 중에 발생한 사고에 그가 유일하게 의지하며 지냈던 선생님은 그만 몸져누웠다고 한다.

세 살배기 어린아이는 홀엄마의 생업 때문에 돈을 받고 아이를 돌보던 이웃에 맡겨졌다가 짐승 같은 어른에게 맞아서 온 몸에 피멍이 든 채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억울한 원혼이 되어 구천을 방황할 어린애와 그 엄마의 절망과 고통을 누가 어떤 방법으로 달래줄 수 있을까?

지금 내 귓속에는 수많은 매미와 온갖 풀벌레들이 살고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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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이른 새벽에 출발하여 포항의 기숙사에 들러 애를 태우고, 학교 다닐 적 사촌동생하고 배낭여행 일정 중 들른 이후로 업무 때문에 잠깐 지나친 것 말고는 처음인 경주엘 갔다.

 

시간 여유가 있으면 이곳 저곳 들러보고 싶은 곳이 많았으나, 고작 황남동 고분군과 첨성대, 불국사, 석굴암 등(전형적인 중, 고등학생 수학여행 코스다.)을 주마간산 식으로 둘러보는 데에도 어둠이 짙을 무렵에 이르러서야 마칠 수 있었다.

 

불국사의 자운교나 대웅전 마당의 석가탑, 다보탑은 예전에 직접 보기도 했고, 사진이나 그림으로 하도 많이 봐 왔지만, 볼 때마다 그 느낌이 새롭다. 저게 모두 화강암을 깎아 만든 조형물이라니... 석굴암 역시 본존좌불을 대하는 순간마다, 헉! 하고 숨이 막힐 듯한 감동을 느낀다. 게오르규는 그 자리에서 엎드려 절을 올렸다던데....

 

그런 건축물들을 보면서 느끼는 것이 '경탄'이라는 단어로 표현될 수 있다면, 반면 황남동 고분군들의 거대한 민둥 무덤들을 보는 느낌은 좀 더 복잡미묘했다. 그 공간배치나 형태와 같은 조형미에 눈길이 가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한 사람의 죽음과 무덤이라는 관점을 버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죽을 때마다 그 죽음에 대한 나름의 격식을 갖추고 또 주검에 대한 의식을 행하지만 죽고 난 이후에도 그 가치에 대한 평가가 제 각각이며 후속으로 따르는 절차와 양태가 제 각각이란 생각과, 저토록 거대한 무덤을 축조하는 데 소요되어야 했을 수 많은 민초들의 땀과 눈물에 대한 불편한 감정이 그보다 수만 배(?)는 더 한 다른 나라의 다른 건조물들을 볼 때 느끼는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각설하고, 인간이 죽어서까지 다른 생명체와 구분 되어져야 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만물 순환 상의 한 사이클로 나고 죽음이 있다면 시베리아 지역에 사는 일부 몽골리안 부족들과 히말라야의 일부 고산지대 주민들처럼 주검을 새나 동물들이 먹기 좋게끔 손질해서 바치는 것까지는 못하더라도 죽어서까지 산과 들을 황폐하게 하는 무덤을 만드는 일은 하지 말았으면 한다. 자연으로부터 온갖 것들을 얻으면서 살아가는 인간들이 무언가는 그를 위한 일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어떤 이(일본의 한 여행가)는 주검을 화장해서 재로 뿌리는 인도라는 나라와 일생을 자연으로부터 받으며 살아왔으니 죽어서는 그들에게 되돌려줘야 하기에, 기꺼이 새와 야생짐승들에게 바치는 아메리카 인디언이 생활한 아메리카대륙이 왜 생기가 다른가에 대해서 말하기도 하지만, 그런 정도까지의 비약은 부질 없는 일이고, 다만 온 산하를 무덤이라는 해괴망측한 인공지물로 덮어버리려는 인간의 단견들이 안타까울 뿐이다.

 

하여 난 죽으면 새나 짐승에게 내 몸을 던져 보시하지는 못할 망정 결코 자연을 해치며 봉분을 만들어 뗏장을 덮는 일은 하지 않으리라 다짐을 한다. 어릴 적부터 워낙 산을 좋아했고, 산과 더불어 자랐으며, 결국은 산으로 돌아갈 날을 준비하는 자가 산을 사랑하는 수 많은 일들 중 아주 작은, 보잘것없는 단 한 가지만은 확실히 실천하고 싶은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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